'복온공주'와 연관된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었다[문암 역사작가의 보금자리-2026-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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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복온공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왕실의 사당으로 추정되는 '관월당(觀月堂)'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구체적으로 '관월당'에 봉안된 인물이 '복온공주'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싶었다.
필자는 그동안 '복온공주'가 1830년 송현동에 위치한 '창녕위궁'에서 가례를 올린 이후 1832년 불과 15세의 연령으로 졸서(卒逝)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갑오재동제물정례책(甲午齋洞祭物定例冊)'의 발견을 통해 '재동'이라는 변수가 등장하였다.
이 책은 1834년 순조가 승하하기 얼마전에 '복온공주 궁다례(福溫公主宮茶禮)'를 거행할 때 올렸던 음식 리스트를 직접 저술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임하필기(林下筆記)'와 '복온공주 가례등록(福溫公主嘉禮謄錄)'을 통해 기존에 알려진 내용과 다른 내용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구체적으로 '임하필기'에서는 '창녕위궁'이 순조가 하사한 것이 아니라 본래 소유자인 심상규가 세상을 떠난 1838년 이후 창녕위가 송현동에 이주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필자가 '갑오재동제물정례책'에 주목했던 핵심 포인트는 송현동이 아니라 재동이 등장한 대목이었다.
이를 해석하면 1834년 당시 재동에서 '궁다례'가 거행된 사실이 문헌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또한 '복온공주가례등록'에 나오는 '재동본궁'을 통해 복온공주가 기존에 알려진 바와 같이 송현동에서 가례를 올린 것이 아니라 재동에서 올렸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이를 정리하면 복온공주는 1830년 '재동본궁'에서 창녕위 김병주와 가례를 올리고 1832년 바로 그곳에서 졸서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것이 팩트라면 그동안 미스테리로 생각되었던 '갑오재동제물정례책'에 나오는 '재동'의 의미가 명확히 이해되는 것이다.
그 이후 심상규가 세상을 떠난 1838년 이후 '재동본궁'에 거주하였던 김병주가 송현동으로 이주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복온공주가 거주하였던 재동의 구체적인 위치는 어디였을까?
이 지번과 관련해 떠오르는 곳이 있으나 아직은 추정 단계이기에 본 칼럼에서 공개하지 않기로 하였다.
차후에 복온공주가 2년동안 거주하였던 지번이 공식적으로 확인되면 공개할 것이다.
2026년 5월 7일(목) 문 암 올 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