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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9일 사순 제5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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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리라.

복음: 요한 11,45-56 


하느님 백성의 무류권 


축음기 영사기 전구 등 무려 1300건이 넘는 발명품을 내놓은 에디슨(1847~1931)도 생애의 말년에는 특유의 외고집으로 인해 실패를 거듭하다가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70세가 넘어서도 잠자는 시간이 하루 4시간에서 5시간으로 늘었을 뿐  여전히 일에 열중했지만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축음기 회사에 과도한 애착을 느낀 나머지  시대가 요구하는 라디오방송이나 레코드플레이어의 시장성을 무시한 것이 그의 실책이었습니다. 


에디슨은 “사람들은 라디오 방송국이 일방적으로 내보내는 프로그램에 곧 싫증내고 우리 회사의 축음기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싶어 할 것”이라고 우겼습니다. 


세 아들이 아버지를 설득하다 끝내 고집을 꺾지 못하자

몰래 전기식 레코드플레이어 제조에 나셨다가 에디슨의 격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70대 후반이 돼서야 에디슨은 주변의 충고를 받아들여 축음기 생산을 그만두고 라디오 제조에 나셨으나 다른 회사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고, 결국 2년 후 2백만 달러의 손해를 보고 공장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물론 내가 확신하는 것에는 목숨을 걸 수 있어야합니다. 그렇게 순교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선까지 확신으로 목숨을 걸어야 할까요? 


에디슨은 온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혼자만 고집하다가 말년에 실패만 거듭하는 우울한 삶을 살았습니다. 


철새는 때가 되면 온도가 적당하고 먹이가 풍부한 곳으로 이동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추위가 오고 먹을 것이 없어 죽고 맙니다.

그런데도 혼자만 남아있겠다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철새 대부분 안에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그래야만 한다’는 ‘공통된 뜻’이 들어있습니다. 결국 그 뜻을 따르지 않으면 외롭게 죽어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942년 세계 제2차 대전 중 독일의 히틀러는 그 추운 겨울날 30만 명의 독일 군에게 모스크바를 침략,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불가능하다는 참모진들의 말에도아랑곳하지 않은 히틀러는 자신의 명령이 취소될 수 없음을 주장했습니다. 


결국 독일군은 넉넉하지 못한 식량과 매서운 추위에는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무기를 가지고 진격을 감행했습니다. 그 결과 독일군은 20만 명이 전사하고 9만 명은 포로가 된 치명적 패배를 당했습니다. 살아 돌아온 병사는 겨우 6천 명 가량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와 같은 운명을 함께하는 이들 전체’가 나와 생각이 다르다면 그 땐 나의 확신을 접는 것이 좋습니다. 히틀러의 결정을 반대하던 이들은 적인 러시아군들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아군들이 모두 반대하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편이 다 반대하는 것을 혼자 밀어붙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것은 확신을 넘어선 고집과 아집이 되어버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디슨도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고집이 세어졌던 것 같습니다. 시대의 흐름이 자신을 따라와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철새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자신도 그 무리에 함께 끼지 못하면 죽는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의 결정을 반대했던 사람들은 남들이 아닌 바로 아내와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를 위하는 사람들이 모두 반대하는데 고집을 부리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유다 지도자들은 큰 혼란에 빠집니다. 


바로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그리스도께로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입니다.” 


유다 지도자들이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편이라면 그들을 따를 줄도 알았어야 했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아집으로 예수님을 없앨 방법만을 찾습니다.

이는 자신들이 그 백성에 속해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하느님 백성의 무류권”을 인정하였습니다.  즉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한 목소리를 낸다면 그것엔 오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작용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백성이 이젠 라틴어가 아닌 자국어로 미사를 하는 것을 원한다면그것을 따라 주어야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싫어서 교회를 등지고 끝까지 라틴어 미사를 고수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가 급속도로 확산되자 유다 지도자들은 본격적으로 그들을 박해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때 가믈리엘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유다 지도자들은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방향을 거부했기에  하느님을 대적하는 이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성령께서는 교회 안에서 우리 마음을 이끄십니다. 앞으로도 어떻게 우리를 이끌지 모릅니다. 


혼자만 고집부리며 자칫 하느님의 이끄심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주위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는 곧 하느님의 목소리입니다. 


백성에게 순종하는 것이 곧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나와 같은 편이 모두 원한다면 그것을 따라줄 줄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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