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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7일 사순 제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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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때부터 유전자에 새겨지기 때문에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바뀌지 않을까요? 성격이 타고난다고 하지만, 성격의 상당 부분은 태아기와 유아기에 각인된 경험으로 형성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평생 바뀌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운동을 하루도 빠짐없이 해서 튼튼한 몸을 만들 수가 있듯이, 자신이 바꾸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노력하면 분명히 성격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바뀌어 갑니다. 성격, 자아, 행동양식, 습관 모두 바꿀 수가 있습니다.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근육질 몸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자신이 변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분명히 바꿀 수 있습니다. 단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기에 쉽게 포기해서 문제입니다.


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은 죄의 유혹을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다면서,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인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아직 열정을 가지고 변화의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에서 선함으로 변하고자 하는 노력이 바로 하느님께로 향하는 회개입니다.


오늘 복음은 되찾은 아들의 비유입니다. 율법의 유산법은 장자가 아버지 재산의 3분의 2를 가지고 동생은 그 나머지 3분의 1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유산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상속받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생전에 유산분배가 있어도, 분배받은 아들들은 재산에 대한 소유권은 있어도 처분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작은아들은 유산을 분배받았고 처분까지 한 것입니다.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도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를 창조하신 것은 죄를 마음껏 범하라는 이유가 아닙니다. 또 자기 혼자만 잘 살면 그만도 아닙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 안에서 사랑하며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정상의 삶을 지키지 않고, 자기 멋대로의 비정상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요?


정상적이지 않은 작은아들을 용서하고 받아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처럼, 하느님께서는 정상적이지 않은 삶을 사는 우리를 매번 용서하시고 받아주십니다. 물론 복음에 등장하는 큰아들처럼, 세상은 이런 용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벌을 받아 마땅하다면서, 끊임없이 단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사랑이 먼저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향하면 당신의 따뜻한 품으로 안아주십니다.


이를 위해 작은아들이 보여 주었던 모습처럼 하느님 아버지께로 향하는 회개가 필요합니다. 변하고자 하는 우리의 진정한 노력입니다.



오늘의 명언: 사랑은 사라질 운명을 인정하면서도 영원을 믿는 고백이다(로버트 롤런드 스미스).



빠다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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